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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모범이 되는 어른의 태도

by 초록지구별 2022. 4. 18.

일본인 집 현관에서 벌어진 일

내가 1970년대 후반쯤 일본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다. 나는 동경에 있는 우리 교포 학교인 한국 학원에 들러 교장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 교장 선생님, 혹시 일본 가정에 초대받아 갈 일 없소?” “왜 그러십니까? 바로 오늘 저와 전부터 교분이 있던 가정을 방문할 예정인데요." “그러면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을 때 가지런히 벗어 놓고 들어가십시오." “왜죠?” “일본 사람들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요." 나는 교장 선생님의 당부하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일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내 태도를 눈여겨 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초대받은 집을 찾아갔다.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한국에서 온.......' “예, 들어오세요. 잠깐만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더니 그 집 부인이 달려 나왔다. 그 부인은 정말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부인은 내 팔을 잡으며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일본인들이 친절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난히 반가워 하는게 너무 고마워 얼떨결에 현관으로 들어섰다. 나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신을 가지런히 잘 벗어 놓겠다는 생각은 그만 잊어버리고 그냥 응접실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들어가서도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사모님은 건강하시죠?" "네, 잘 있어요. 아이들도 잘 있고요." 그들 내외는 한국의 우리 집에도 다녀간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지들 안부를 전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어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 집 아들의 목소리였다. “그래, 어서 오너라. 한국에서 교장 선생님이 오셨단다.” 그 부인은 초인종이 울림과 동시에 소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맞으러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그제야 현관에 벗어놓은 구두를 기억해 내고는 벌떡 일어서서 응접실을 나왔다. '내가 신발을 어떻게 벗어 놨지?' 나는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을 보면서 1학년 일본 아이가한국의 교장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황해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구두를 들고 서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교장 선생님, 오셨어요."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신발을 얼마나 엉망으로 벗어놓았으면 저렇게 들고 서 있을까. 당시 내 얼굴은 아마 불을 뒤집어쓴 듯 벌갰을 것이다. '저 아이가 내 구두를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나는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 구두를 나갈 때 신기 편하도록 돌려서 내려놓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아서 그 아이가 들고 서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을 알게 되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직도 나는 그 때 내가 신발을 어떻게 벗어 놓았었는지 잘 모른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굳게 마음먹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학교 어린이는 물론 우리 집 아이들부터 신발 제대로 벗어 놓기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검정 소가 더 잘 합니다.

순전이와 순후는 쌍둥이인데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라서 그런지 얼굴 생김새는 물론 말소리와 성격도 비슷했다. 그러나 둘의 학습 능력은 조금 차이가 있다. 순전이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지만 순후는 중간 정도였다. 그 대신 손재주는 순후가 훨씬 나아서 만들기를 할 때는 늘 순전이보다 앞선다. 달리기도 순후가 좀 나았다. 그러니까 순전이는 기억력이나 수리력에서 순후보다 앞서고, 순후는 예체능 방면에 소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 친구들은 처음엔 이 아이들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순전이와 순후를 곧잘 착각하여 약간의 혼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헷갈리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 차이점이란 순후가 순전이보다 허리가 가늘고 눈도 더 깜박이는 것이다. 반 아이들은 이 쌍둥이의 성적을 매우 궁금해했다. 처음엔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는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어느 날 시험을 본다고 하자, 아이들은 두 아이 중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는지 더욱 궁금해했다. 드디어 시험 점수가 발표되던 날, 형인 순전이의 성적이 순후의 것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후에도 순전이의 성적이 더 높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역시 형이 공부를 더 잘 하는구나' 하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며칠 뒤 반 아이들은 동생인 순후가 형인 순전이보다 달리기를 더 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순후는 만들기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노래부르기도 순후가 좀 낫다고 하며 또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방과 후 순전이와 순후는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날 학교에 일이 있어서왔던 같은 반의 중배 어머니가 쌍둥이 형제를 보게 되었다. 중배어머니는 궁금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느닷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저 쌍둥이 중에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나요?"중배 어머니의 질문을 받은 선생님은 난처해졌다. 그 두 아이는 청소를 하다 말고 똑같이 선생님과 중배 어머니를 번갈아 가며쳐다보고 있었다. 순전이와 순후는 평소에는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는가, 누가 더운동을 잘 하는가 등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선생님이 중배 어머니에게 무슨 대답을 하는가 선생님의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검정 소가 더 잘 합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검정 소라뇨? 그게 아니고 저 쌍둥이 중에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냐니까요 ? “검정 소가 더 잘 한다구요.." 선생님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중배 어머니는 계속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아, 어머니께서는 검정 소를 잘 모르시는군요. 옛날에 황희정승이 봤다는 검정 소 말입니다." "선생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그러실 거예요. 하지만 한 시간만 지나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중배 어머니는 그제야 뭔가 짐작이 가는 듯했다. 쌍둥이가 나란히 쳐다보고 있는 앞에서 선생님이 누가 더 잘 한다고 말씀하실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다. 중배 어머니는 쌍둥이가 청소를 끝내고 돌아간 뒤에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중배 어머니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황희 정승은 누런 소와 검정 소가 함께 쟁기를 끌며 일하는모습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저기 두 마리 소 중 어느 소가 더 일을 잘 합니까?" 그 때 논을 갈던 주인은 소를 멈추게 한 후 논둑을 넘어 큰길까지 달려나왔다. 그리고는 황희 정승의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검정 소가 더 잘 합니다." 이 예화는 비록 짐승이라도 앞에 놓고 잘한다 못한다를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중배 어머니는 그제야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미처 쌍둥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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